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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용문사 용문사(龍門寺)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번지 용문산(龍門山) 중턱에 자리한 천년고찰용문사는 통일신라시대인 913년(신덕왕 2) 대경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혹은 통일신라 말 경순왕(재위 927~935)이 행차하고 창건했다고도 한다. 고려 말 1378년(우왕 4) 정지국사 지천 스님이 대장경을 봉안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대표적인 사찰이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조가 되기 전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보전을 지었고, 왕위에 오른 뒤 정희왕후와 더불어 대규모로 중창하였다. 용문사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는 수령 1,100년에 높이 14m나 되는 거목인데,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미리 조짐을 보여주는 영험으로 유명하다. 일명 정삼품송(正三品松.. 2017. 10. 25.
남양주 봉선사 봉선사(奉先寺)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전국제일의 樹林 광릉(光陵) 초입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고려광종 20년에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창건한 고찰. 969년 고려광종 20년에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창건하고 운악사(雲嶽寺)라 하였다. 그 후 조선예종 1년에 세조(世祖)의 비(妃)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 광릉(光陵)이라 하고, 선왕의 능침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地福寺)로 삼고 봉선사(奉先寺)라 하였다. △청풍루(淸風樓) 6.25 사변 전에 천왕문과 해탈문, 그리고 소설루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112평의 대형 누각으로, 1980년 봉선사 신도들의 조약돌 모으기 불사로 이루어진 건물건물 외부는 사면에 걸쳐 4기의 편액이 걸려있는데, 남쪽에는 여초(.. 2017. 10. 25.
소요산 자재암 자재암(自在庵)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산 1 소요산에 자리한 자재암은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 14년(645년)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서, 고려(高麗) 광종(光宗) 광종 25년 (974년) 왕명으로 각규대서(覺圭大師)가 중창했으며, 의종(毅宗) 7년(1153) 화재를 당해 이듬해 각령선사(覺玲禪師)가 대웅전과 요사일부를 중건하였다. 그 뒤 조선(朝鮮) 고종(高宗) 9년(1872) 원공선사(元空禪師)와 제암화상이 퇴락(頹落)된 이 사찰을 44 간의 건물로 복원하고 영원사(靈源寺)라 개칭하였다. 순종 (純宗) 원년(1907) 정미의병(丁米義兵) 때는 이곳이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던 탓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태워졌다. 그 후 제암화상과 그의 제자 성파(性波) 스님이 복원,.. 2017. 10. 25.
포천 자인사 자인사(慈仁寺)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7 명성산(鳴聲山) 자락에 자리한자인사(慈仁寺)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에 재위하자 이곳에 세운 암자로,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에 재위하자 지금의 이 자리에, 그의 시호를 따서 절 이름을 신성암(神聖庵)이라 정하고 국태민안을 기도하였다고 한다. 300여 년이 지난 후 산불에 의해 소실되자 충열왕 3년(1227년)에 다시 재건하고 암자이름을 왕건의 자호를 본떠 약천암이라 정했다고 한다. △미륵불(彌勒佛) 『중국 저장성 봉화현에 이름이 계차(契此)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항상 맨발로 걸어 다녔을 뿐만 아니라 눈 위를 걸어 다녀도 발자국이 전혀 나지 않았으며, 아무 곳에서나 눕고자고하였다. 또 그가 언제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2017. 10. 25.
남양주 내원암 내원암(內院庵)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103 수락산(水落山) 자락에 자리한 신라시대 때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암자신라시대 때 창건되었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해 폐허화되었다가 1955년 비구니 성민(性敏) 스님에 의해 점차 옛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다. 내원암(內院庵)은 성절(聖寺)이라고 불리어오던 절로 조선 후기에 왕실의 도움으로 사세를 확장시켰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후사가 없던 정조는 대구 팔공산 파계사의 승려인 용파(龍坡) 대사로 하여금 내원암에서 기도를 올리게 하여 후궁인 수빈박 씨에게서 순조를 얻었다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왕실과 관련을 맺은 내원암은 이후에도 왕실의 내탕금으로 여러 당우들을 중수하는 등 불사를 이어왔다. 내원암(內院庵) 내원암(內院庵) 입구 △대웅보전(大雄寶殿.. 2017. 10. 25.
남양주 흥국사 흥국사(興國寺)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1 수락산(水落山) 자락에 자리한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 21년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창건한 천년고찰흥국사는 599년 신라 제26대 진평왕(眞平王) 21년 세속오계로 잘 알려진 원광법사(圓光法師)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창건하였으며, 처음에는 절이름을 수락사(水落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선조(宣祖) 때에 와서. 선조는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568년 아버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묘를 흥국사남쪽에 쓰게 되었다. 선조는 부친의 명복과 극랑왕생을 위해, 흥국사를 크게 중수 복원하였다고 한다. 고종의 아버지였던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친필글씨로 큰방에 걸린 흥국사(興國寺) 편액, 만월보전 기둥.. 2017. 10. 24.
남양주 불암사 불암사(佛巖寺)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불암산(佛巖山) 중턱에 자리한 천년고찰불암산중턱에 자리한 불암사는 조선세조 때, 왕실의 동서남북 4대 원찰 (불암사, 진관사, 삼막사, 승가사) 중 "동쪽불암사"라 하여 가장 으뜸으로 꼽는 사찰이다. 불암사는 828년(신라 현덕왕 16년 ) 지증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 불암사(佛巖寺) 경내 △ 제월루(霽月樓) 건물 앞과 뒤에는 각각 제월루(霽月樓)와 불암사(佛巖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불암사(佛巖寺) 편액은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槿, 1835~1919)이 70세 때 쓴 것으로,.... 현재 내부에는 1895년 조성된 괘불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大雄展) △약사전(藥師殿) 내부에는 근래에 봉안한 약사여래좌상과 석가모니가 대각(大覺)을 방해하던 마구.. 2017. 10. 24.
남양주 수종사 수종사(水鐘寺)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남양주 운길산雲吉山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 신라 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며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세조가 1458년 세조에 지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강원도 오대산에 갔다가 남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증 용진강 이수두지금의 양수리에서 밤을 맞아 야경을 즐기는데 운길산 쪽에서 문득 종소리가 들려 그 연유를 알아보게 하니 폐쇄된 천년 고찰이 있고 암굴에 나한이 열좌 하였으며 바위틈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를 낸다고 아뢰니 세조는 이듬해(1459년) 그곳에 절을 다시 짓게 하였다. △보유문화재 △수종사 일주문(一柱門) △사찰 내 마지막문인 불이문不二門) △산신각(山神閣]) 1980년에 지었으며 안에는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2017. 10. 24.
속리산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法住寺) 일시 2010.04.25일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창건했으며 의신조사(義信祖師)는 천축인도(天竺印度)에 갔다가 백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절을 지을 터를 찾아다니는 길에 흰 노새가 지금의 법주사터에 이르러 발 걸을 멈추고 울었다고 한다 노새의 기이한 행적에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니 비범한 기운이 느껴져 이곳에 절을 지은 후 절 이름을 인도에서 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속리산법주사 입장료 1인 3,000원 단체 2,800원 법주사 안내도 일주문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있다.. 2017.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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