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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사찰(寺刹)

포천 자인사

by @산들바람 2017. 10. 25.

자인사(慈仁寺)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7

 

명성산(鳴聲山) 자락에 자리한자인사(慈仁寺)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에 재위하자 이곳에 세운 암자로,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에 재위하자 지금의 이 자리에, 그의 시호를 따서 절 이름을 신성암(神聖庵)이라 정하고 국태민안을 기도하였다고 한다. 300여 년이 지난 후 산불에 의해 소실되자 충열왕 3년(1227년)에 다시 재건하고 암자이름을 왕건의 자호를 본떠 약천암이라 정했다고 한다.

 

포천 자인사 1

△미륵불(彌勒佛)

 

『중국 저장성 봉화현에 이름이 계차(契此)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항상 맨발로 걸어 다녔을 뿐만 아니라 눈 위를 걸어 다녀도 발자국이 전혀 나지 않았으며, 아무 곳에서나 눕고자고하였다. 또 그가 언제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항상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고, 먹을 것은 아무거나 주기만 하면 받아서 그 자루 속에 넣어 두었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주위에서 그를 가난에서 구제해 주고 복을주는 부처님이라고 하여 별호를 구빈복불(救貧福佛) 또는 포대보살이라고 불렀다. 후세에는 그가 생전에 박복한 자에게 복을 주고 실덕한 자에게 덕을 쌓도록 인도하였다고 하여 인덕불(引德佛) 또는 시복불(施福佛) 포대화상(包袋和尙)등 명칭이 수없이 붙여졌으며, 중국에서는 그대로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불(彌勒佛)로 주불이 된 것이다.』

 

포천 자인사 2

△극락보전(極樂寶殿) 자인사(慈仁寺) 대웅전(大雄殿)

 

「미륵」이란 말의 본뜻이 불가(佛家)에서 자비(慈悲)라는 말이고 궁예왕이 미륵세계를 구현코자 함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 慈仁이란「仁」 자는 용서와 화해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라 하여 영계(靈界)에서나마 궁예왕과 태조 왕건의 맺힌 악연( 惡緣)을 풀고 미륵세계를 구현하소서 하는 기원의 의미로 지어진 절 이름이었다.

 

1993년 지금의 정영도 스님이 국민관광지에 어울리도록 석고미륵불이 서 계시던 곳에「극락보전」을 다시 짓고 미륵좌불(彌勒座佛)을 새로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포천 자인사 3

△삼성각(三聖閣)

포천 자인사 4

△약사전(藥師殿)

포천 자인사 5

△ 자인사(慈仁寺)

자인사 잿터바위

△젯터바위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왕건이 국태민안을 기원했다고 하는 바위, 그래서 이곳을 '재를 올린 터(잿터절)' '잿터바위'라 하며,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성취 하게 되어 궁예왕이 왕건의 군사에 밀리고 쫓겨 지금의 명성산성에 진을 쳤을 때, 이곳의 커다란 바위에 제사상을 차리고 자주기도를 올리던 "터" 였다고 한다.

 

거란침입, 몽고침략, 6.25 사변 등 수많은 전란을 거치는 동안 남북의 길목으로서 자주 전쟁터였던 관계로 정확한 문헌과 역사적 기록은 모두 소실되어 절의형체는 없고 절터와 민가의 구전으로 전하는 이야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던 것을, 1964년 김해공 스님이 현지에 허물어진 축대와 옛 법당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주춧돌만 몇 개 나뒹구는 것을 말끔히 다듬고 석고로 된 18척의 미륵불 입상을 조성 13평의 조그만 암자를 세워 절 이름을 자인사(慈仁寺)라고 정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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