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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문화유산

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 화신

by @산들바람 2021. 8. 13.
화신 백화점
종로의 랜드마크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종로의 랜드마크였던 화신 백화점은, 1937년 종로에 화신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도시개발과 맞물려 사라지는 1987년까지 반세기 동안  종로의 랜드마크로 누려왔다.  "화신백화점" 은 현재 종각역의 보신각 길 건너 현재의 "종로타워" 자리에 화신백화점이 있었다. 화신백화점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는 "종로타워" 또한 현재의 종로 랜드마크 일 것이다.

 

종로공평유적지-안내
공평유적전시관-종로의역사

"종로타워" 옆으로 조계사 방향 100여 m 지점 지하 3층 아래에는 거대한 종로 공평 유적지가 있으며, 이곳에 "공평 유적전시관"이 있다. 이곳 기획전시실에서 "화신백화점_사라진 종로의 랜드마크" 전시가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육의전 중 으뜸인 선전(縇廛), 화신백화점, 종로타워 모두 한양의, 경성의, 서울의 상업중심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옛-화신백화점-3차원-이미지
종로-화신

조선시대 종로와 현재의 종로 3차원 홀로그램

 

 

옛-화신백화점-로고
1930년대-화신백화점-시계탑

 

6070 시대 화신백화점의 상징물 같은 화신백화점의 시계탑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던 그 시절이 어렴풋이 스치고 지나간다.

 

 

1930년대 경성 화신(化信)

 

일정시대-화신백화점-로고
1937년대-새로운-화신백화점-개점
화신의탄생

1931년을 시작으로, 1935년 화재로~~ 1937년 지하 1층, 지상 6층의 현대식 건물이 종로 대로에 들어섰다. 경성 시내 어디에서나 화신에서 밝히는 화려한 네온사인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일정시대때-경성의-5개-백화점소개
경성의-백화점

1930년 당시 경성의 인구는  30만 명밖에 안되었는데, 종로를 중심으로 자그마치 대형 백화점이 5개나 있었다고 한다. 하라다 (平田), 미나카이(中井). 죠지아(丁子屋), 미츠코시(三越), 그리고 화신(和信) 백화점, 이 5개 백화점이 그 시대의 주역이었다고 한다. 1930년대 경성은 백화점시대였다,라고 말할만하다.

 

 

당시 경성 시내 백화점 중 유일한 민족 백화점이 된 화신(和信)

 

약진하는 조선의 "화신" 조선의 백화점 등 민족성을 대대로 선전을 했다. 일본인의 종로 진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화신의 경품행사 중 대대적으로 열렸던 것은 1932년 동아백화점을 인수하기 이전의 행사로 , 경품은 사직동 소재 8칸 한옥을 경품으로 내걸었는데, 당첨자는 종로 6 정목 소재 동대문 유치원의 보모 24세의 이명희였다고 한다.

 

 

조선의-자존심-화신백화점

유일한 조선의 화신백화점

 

6층-화신백화점-층별안내
백화점-내부

지하 1층 지상 6층의 초현대시설의 백화점 화신(和信)

 

화신백화점의-역사적-기록물
화신의역사

화신백화점의 기록물

 

화신백화점-모던보이-모던걸-유행

 

젊음의 로망

모던보이, 모던걸

 

화신백화점-모던보이-모던걸-치장비용-소개

당시 유행하던 젊음의 로망, 화신백화점에서 폼나게 치장하고 거리를 활보하려면 얼마나 들여야 했을까??

 

1935년 12월

화신 백화점 Modern 비용

몸치장 비용(양복, 양장, 액세서리 등)

모던보이는 410원 55전

모던걸은 516원 5전

 

※당시 화신백화점 점원 초임 월급은 30원이었다고 한다. 30원은 모던보이, 모던걸의 외투 한벌도 살 수 없는 돈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최신 유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판매를 하였는데, 사람들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모던의 양식(樣式)인 최신 유행품을 구매하였다고 한다.

 

 

화신백화점-젊음-치장용품-01
화신백화점-젊음-치장용품-02

양산, 모자, 장갑, 지갑 등 모던걸 치장품

 

화신백화점-젊음-치장용품-03
화신백화점-젊음-치장용품-04

모던보이, 모던걸의 기본 차림

 

화신백화점-젊음-치장용품-05
악세사리

최고급의 액세서리 치장품

 

 

기억 속으로 사리진 화신(和信)

 

기억속으로 사라진 화신-01
기억속으로 사라진 화신-02

회신을 기억하는 기록물만이 화려했던 그 시절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기억속으로-사리진-종로의-랜드마크-화신

해방이 다가올 무렵 경성은 전쟁의 한 복판에 있었다. 당시 화신은 군수회사인 비행기 제조회사까지 차려 일제에 부응하였다, 해방이 된 후, 일제에 협력한 죄로 화신 박흥식은 반민특위 제1호로 검거되었다.

 

기억속으로-사리진-종로의-랜드마크-화신-02

 

화신의 전성기는 6.25 때 불타 뼈대만 남았던 건물 위에, 화신(和信)은 새로운 도약으로 재기하려 했으나, 초현대적으로 생겨나는 백화점 앞에 힘을 잃게 되었고, 결국 1987년 종로의 랜드마크로 지리매김 했던 화신(和信)은 도시 재개발사업과 맞물려 역사 속으로 사라 졌다.

 

6.25 동란 후 종로 기록물

 

6.25-동란이후-종로거리-01

역사 속으로 사라진 회신

 

6.25-동란이후-종로거리-02

1970년대 종로거리

 

6.25-동란이후-종로거리-03

1970년대 힘들던 시기 종로 한복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넝마주이 

 

6.25-동란이후-종로거리-04
역사속으로-사리진백화점

 

종로의 랜드마크로 50년 세월을 지켜온 종로 1가 화신(和信)을 기억하는 분들은 한 번쯤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되돌아 가 불 수 있는 볼만한 전시인 것 같아 소개해 보았다,

 

공평 유적전시관을 찾으면 종로 공평동 일대 유적지를 함께 관람할 수가 있다.▼

 

종로 공평동 유적지

종로 2가 공평동 도시 유적지② 2015년 종로 2가 공평동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는 역사도시 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가 온전하게 발굴되었다

balgi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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