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丁若鏞) 유적지
남양주 조안면 다산로
2020.06.14일
조선 후기의 실학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 여유당(與猶堂)과 묘가 있는 유적지를 둘러보고, 북한강변의 다산 한강 생태공원 둘레길을 거닐어보는 여행
정약용 유적시 입구
정약용 유적지 다산 문화거리 코로나로 한산하다.
다산문화관
코로나로 현재 휴관중
정약용 선생의 묘와 여유당 입구
좌로 기념관이 있고 우로는 야유당이 있다.
정약용 기념관
코로나로 여기도 휴관중
녹로(轆轤)
정약용 선생이 화성을 쌓을 때 활용한 발명품중 하나로, 활차(滑車 : 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데 쓰였다.
거중기(擧重機)
1792(정조6넌) 다산 정약용선생이 서양의 기술과 도르레를 이용 창의적으로 만든 기구로, 수원화성 축조에 사용하였다.
다산 정약용선생의 철학사상
①정치사상(政治思想)
임금은 백성을 위하고 군자는 자신을 바로 세운 후에 남을 다스리는 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선생의 정치사상은 오늘날 지도자가 걸어가야 할 바른길을 가르쳐 주고 있다.
②경제사상(經濟思想)
기술 발달과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을 제시하고 농업생산성 제고를 위한 정책인 여전제, 정전제를 제안,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고 조세 부담의 공평성을 기하는 등 능률적인 경제운영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다.
③사회사상(社會思想)
폐단과 부패로 어지러운 봉건시대에 핍박받는 민생의 편에서 사회제도를 백성을 위한 혁명적 개혁으로 주창하고 신분제 개혁 서얼 제도 철폐 등 근대적인 의미의 평등사회, 능력위주의 사회를 주장한 다산이 모습 속에서 모순의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고뇌했던 참 지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④과학사상(科學思想)
서양의 천문, 지리, 농사 정책, 수리 기술 측량법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과학이 민생에 실질적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실용론을 주장하였으며, 실제로 거중기, 프리즘, 종두법을 발전시키는 등 과학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오늘날 과학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⑤문학사상(文學思想)
진실은 삶의 맥락에서 권력에 저항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의 편에 설 때 아름답다. 참된 지식인은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기에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과, 사회의 폐해를 비판하고 개혁하려는 경륜의 정신이 담긴 다산의 문학은 이 시대 문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⑥교육사상(敎育思想)
개혁은 발전을 위함인가 평등을 위함인가의 물음에 다산은 결론적으로 발전을 위함이라고 했다. 현실적인 것을 연구하자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 교육을 주창, 민생과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는 교육의 정도를 일러주고 있다.
다산 선생 사당 문도사(文度祠)
다산 선생 사당 문도사(文度祠)
언덕위의 북한강이 보이는 다산선생 묘지
다산선생이 회갑인 61세에 파란 많은 삶을 회고 하면서 지은 자찬 묘지명(自撰墓誌銘)
여유당 뒷산의 다산 정약용선생 묘지
여유당(與猶堂) 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이 있었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 정일권 국회의장의 휘호를 각사 하여 비를 세웠다.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로, 학자로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주창하셨다.
안채와 사랑채
뒤꼍의 장독대와 우물
안채
여유당(與猶堂)
여유당 뒷산의 묘소에서 보면 북한강이 보인다.
정약용선생의 생가 여유당(與猶堂)
여유당의 낮은 담장은 허물없이 백성들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고자 했던 선생의 마음이 담겨있다.
실학 박물관
코로나로 현재 휴관중
홍이포(紅夷砲)
길이 215cm, 중량 1.8t, 구경 10cm, 최대 사정거리 2~5km 사정거리 700m인 전장 포로, 네덜란드에서 중국 청나라를 거쳐 유래된 대포로, 그 당시 네덜란드를 붉은 오랑캐라는 의미의 홍이(紅夷)라고 불렀기 때문에 홍이포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홍이 대포(紅夷大砲)라고도 부르며, 전시된 홍이포는 1637년 중국 연안을 수비하기 위해 설치한 16기 중 하나를 복제한 것으로 실제 발사 기능하다.
다산 문화거리
다산 선생의 저서
천일각(天一閣)
다산의 18년 강진 유배 생활 중 1808년(순조 8년)부터 10여 년 동안 거처하던 다산 초당에서 약 110m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정자로, 이곳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심신을 달래고 소일하였다고 한다.
전남 강진에 있는 것을 다산 문화 거리에 일부를 재현한 것이다.
https://balgil.tistory.com/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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