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산책 창경궁에서 창덕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2023.03.19일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 창경궁에서 창덕궁을 산책해 보있습니다. 창경궁을 찾은 것은 홍매를 보러 같는데 , 황매는 활짝 피었으나 홍매는 창경궁, 창덕궁 모두 만개한 예쁜 꽃을 만나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조선 5대 궁궐 창경궁(昌慶宮)
창경궁은 세종대왕 때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습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1616년 다시 세웠으며, 1624년 이괄의 난으로 소실된 많은 전각들이 1633년에 중건했습니다. 일제강점기 1909년에 일제가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으며, 1911년에는 박물관을 짓고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었습니다. 1984년 일제가 철거했던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 정비하면서 옛 이름인 창경궁(昌慶宮)을 찾게 되었으며, 지금도 복원 중에 있습니다.
명정문 일원 복원정비를 완료하여 문정문을 통해 정전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명정전(明政殿)
국보 제226호
1616년에 재건된 명정전은 창경궁의 중심전각으로, 각 궁궐에 남아있는 정전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합니다. 명전문과 행각(보물 제385호)이 조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행각들은 왕실 친위부대의 주둔지나 왕실의 초상을 치르기 위한 재실로도 쓰였으며, 남쪽을 향하고 있는 다른 궁궐의 정전과는 달리 동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 옆으로 왕실과 관련이 있는 관청 궐내각사가 있었던 자리로, 일제 강점기 시절 왕실 관청을 없애고 이곳에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동물원을 만들었으나, 1980년대부터 복원작업을 진행 창경궁 옛 모습으로 복원 공개하고 있습니다.
관천대(觀天臺)
보물 제851호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천문기구인 소간의 를 놓았던 돌로 만든 천문대입니다
창경궁에서 종묘로 가는 사잇길로, 끝 지점에 종묘 북신 문 이 보입니다. 현재는 이 길은 미공개 중이나, 창경궁에서 종묘로 들어갈 수 있게 통합관람 체계가 완료되면 창경궁에서 종묘로 갈 수 있게 됩니다. 종묘 사잇길은 현재 복원 완료하여, 북신 문 앞 율곡로 사잇길을 주간에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숭문당(崇文堂)
명정전의 후 전에 해당하는 건물로, 임금이 신하들과 국사를 의논하던 곳으로, 1830년에 세웠으며, 영조임금의 친필 현판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함인정(涵仁亭)
사면이 모두 트인 형태의 개방된 ;정자로서는 규모가 큰 편이며, 영조는 이곳에서 문과 무과에 급제한 인재들을 만나보기도 하였으며, 1833년에 세웠습니다.
양화당(養和堂)과 통명전(通明殿)
양화당은 내명부의 어른들이 손님접대하던 장소로, 임진왜란, 이괄의 난으로 화재가 났으며, 순조 30년(1830년)에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순조 33년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통명전(通明殿)은 왕과 왕비가 생활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입니다.
영춘헌(迎春軒)과 집복헌(集福軒)
후궁들의 처소가 밀집되어 있는 영역으로, 영춘헌과 집복헌도 후궁의 거처였습니다. 두 건물은 서로 붙어있으나, 원래는 두 집으로 1864년에 다시 세우면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세자와 순조가 집복헌에서 탄생했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승하하였습니다.
창경원시절 양옆으로 일제강점기 벚꽃 벚나무를 심어 놓았던 것을 모두 없애고 옛 모습을 없애고 노송숲으로 가꾸어놓은 대온실로 가는 숲길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창경궁 대온실
팔각 칠 층 석탑
(八角七層石塔)
보물 제1119호
춘당지 위에 있는 석탑으로, 높이 6.5m의 팔각석탑으로, 기존의 석탑과는 양식을 달리하는 있는 중국풍의 석탑.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는 이곳의 일본풍 연못을 조성했으나. 강정기 잔재를 없애고 새로 조성한 창경궁의 연못입니다., 대 춘당지와 소 춘당지 가 있으며, 대온실 앞에 있는 소 춘당지가 원래의 춘당지이며, 대 춘당지는 1984년 조성한 연못입니다.
세계유산 창덕궁(昌德宮)
창덕궁은 조선 3대 임금 태종이 1405년 창건한 제2궁궐로, 수도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 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고, 270년간 창덕궁이 조선왕조 제1의 정궁으로의 역할을 하였으며, 마지막임금인 순종 때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합니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東闕)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정각과 낙선재 후원 주변은 홍매로 인기 많은 지역으로, 3월 말쯤이면 활짝 핀 홍매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석복현은 경빈의 처소, 수강재는 수렴청정이 끝난 순원왕후를 모시던 곳이었습니다. 헌종의 뜻에 따라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외형을 지녔으며, 낙선재현판은 청나라대가 섭지선의 글씨이며, 대청마루 앞 주련에는 추사 김정희의 스승 옹방강의 글씨가 있습니다.
원래 왕의 연구실이었는데, 연산군 대에 와서 희정당으로 바꾸었습니다. 왕의 침실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1917년의 화재를 복구하면서 경복궁의 강녕전을 이전한 것으로 본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며, 현재의 모습은 1920년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선정전(宣政殿)
보물 제814호
태종 5년 창건하였으며, 당시에는 조계청이었으나 세조 7년에 선정 전으로 고쳤습니다. 왕과 왕비가 크고 작은 행사를 벌였으며, 성종 때 왕비는 이곳에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고, 친히 누에를 치는 일을 모범으로 보였으며, 왕이 주연을 열기도 한 곳입니다
인정전(仁政殿)
국보 제225호
태종 5년(1405) 창덕궁 창건과 더불어 건립되었으나 태종 18년(1418) 박자청에 의해 다시 지어진 전각으로,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의 조회, 외국사신접견등 중요한 국가적 의식을 행하던 곳입니다.
정전으로 들어가는 인정문과, 후원으로 가는 문 숙장문
진선문(進善門)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錦川橋) 너머에 있는 문으로, 태종 때 신문고가 설치되었던 곳입니다.
돈화문과 옛 모습으로 복원 완료한 월대
화창한 주말 창경궁에서 창덕궁을 산책해 보있습니다. 홍매를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네요, 3월 말쯤이면 활짝 핀 홍매를 만날 수 있을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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