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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사찰(寺刹)

천보산 회암사지

by @산들바람 2017. 10. 30.

 

양주 회암사지 (楊州 檜巖寺址)

사적 제128호

2014.06.06일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 14번지 고려 충숙왕 15년(1328)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로, 조선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하며,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 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생활 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고 하며,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졌습니다.

 

고려시대에 세운 나옹의 행적을 새긴 회암사지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를 비롯하여, 지공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49호) 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 나옹의 부도 및 석등(경기도유형문화재 제50호)과 조선시대에만 들어진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무학대사비(경기도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지부도탑(경기유형문화재 제52호) 어사대비(경기유형문화재 제82호) 맷돌(경기민속자료 제1호)과 당간지주, 건물의 초석들이 남아있습니다.

 

천보산-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지(檜巖寺址) 박물관

 

박물관은 고려말에서 조선 초 최대의 왕실사찰로 그 가치가 매우 큰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많은 소장품을 전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소장품은 토수와 용두, 잡상등 기와류, 왕실용도자기류, 청동 금탁 과 회암사 불화등의 유물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천보산-회암사지-발굴중인-모습_01

 

천보산기슭에 자리한 회암사지(檜巖寺址)는 지금도 발굴작업 중에 있습니다.

 

천보산-당간지주

 

△회암사지 당간지주(檜巖寺址 幢竿支柱)『향토유적 제13호』 당(幢 : 불화를 그린 旗)을 걸었던 장대, 즉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우는 기둥으로, 모두 넘어져 묻혀있던 것을 1981년 복원한 것으로, 서쪽당간지주는 높이 325cm, 가로 52cm, 세로 58cm이며, 동쪽 당간지주는 높이 325cm, 가로 61cm, 세로 55cm이며, 모두 황갈색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천보산-회암사지-발굴중인-모습_02

 

대웅전이 있던 자리 지금도 발굴작업 중인 회암사지 회암사지(檜巖寺址) 전망대에서 규모를 보면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천보산지릭-회암사지-전경

 

발굴작업 중인 회암사지

 

회암사지-맷돌

 

△회암사지맷돌(檜岩寺址맷돌)『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호』

 

회암사터에 남북으로 나란히 남아 있는 2기의 화강암 맷돌로, 곡식을 가는데 쓰이며, 주둥이가 길어 타원형에 가까워서 주둥이가 짧았던 조선시대 맷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쪽을 고정시키기 위한 매함지와 맷돌을 함께 만들고, 맷돌을 돌리는 맷손을 중심부에 박아놓은 모습 또한 특이하며, 맷돌의 정확한 재작년대는 알 수 없으나, 형태로 보아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진 출처/문화재청

 

천보산-회암사지-부두탑

 

△회암사지부도탑 (檜岩寺址浮屠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입니다. 회암사터의 가장 북쪽에 서 있는 이 부도는 그 주인공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우 스님이나, 회암사 중창에 힘쓴 부도탑으로 추측되기도 하며,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작품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화려함이 느껴져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천보산-회암사지-발굴모습-전경

 

양주 회암사지( 楊州 檜巖寺址) 회암사(檜巖寺)가 정확하게 언제 창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다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 2에 1174년(명종 4) 금(金) 나라의 사신이 회암사를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1313년(충선왕 5)에는 태고(太古) 보우(普遇)[1301~1382]가 회암사에서 광지(廣智)에게 출가하였다고 하며,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나옹(懶翁) 혜근(惠勤)[1320~1376]이 회암사에서 수도하던 중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며, 이상의 기록을 통해 회암사는 늦어도 12세기 무렵에는 이미 창건되어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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