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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사찰(寺刹)

양주 회암사

by @산들바람 2017. 10. 29.

회암사((檜巖寺)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산 8-1번지

2017.10.29일

 

삼산양수(三山兩水)의 천혜의 길지 로 지공선사(指空禪師)께서 이곳에 터를 잡으라 하셨고, 제자인 나옹선사(懶翁禪師)께서 이곳에 도량을 열었고, 그의 제자 무학대사(無學大師)께서 태조이성계와 함께 대대적인 중창을 한 천년고찰

 

양주 회암사 1

양주 회암사((檜巖寺)

 

양주 회암사 2

 

△회암사((檜巖寺)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천보산(天寶山) 자락에 있는 사찰로, 1328년(충숙왕 15)에 인도에서 원(元) 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화상(指空和尙)이 인도의 아라난타사 (阿羅難陀寺)를 본떠서 창건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다. 그 후 1374년(공민왕 23)과 1376년(우왕 2),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중건, 다시 조선시대에 이르러 1472년(성종 3)에 세조비(世祖妃)인 정희왕후 가 정현조(鄭顯祖)로 하여금 다시 중건케 하였다.

 

그 후 폐사 되었던 것을 1821년(순조 21)에 지공 나옹 무학 등 세 승려의 부도와 비(碑)를 중수하면서 옛터의 오른쪽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의 절이름을 계승하게 되었다.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제387호인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擔條寺批禪覺王師備), 보물 제388호로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부도인 회암사지 부도(浮屠), 보물 제389호인 회암사지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이 있으며,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지공선사부도(指空禪師浮居) 나옹선사부도(懶翁禪師浮屠) 무학대사비(碑)등이 있다. 이와 함께 본래의 회암사절터인 회암사지는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전기 왕실의 보호를 받던 절로서 태조 이성계가 늙은 후에 머무르면서 수도 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양주 회암사 3

대웅보전(大雄寶殿)

 

양주 회암사 4

관음전(觀音殿)

 

양주 회암사 5

조사전(祖師殿)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신 곳

 

회암사지-선각왕사비

회암사지 선각왕사비(檜巖寺址禪覺王師碑)

 

『보물 제387호』

회암사터에 서 있었던 비석으로, 고려말의 승려인 나옹(懶翁) 화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나옹(1320-1376)은 1344년에 회암사로 들어가 불교에 입문하였다. 1358년 원나라에서 돌아와 왕의 부름을 사양하고 구월산과 금강산 등에서 은거하다가 회암사로 다시 돌아와 절을 크게 새로 지어 올렸다.

 

신륵사에서 57세로 입적할 때까지 불법만을 행하였으며, 입적한 후 시호를 선각이라 하고 그 이듬해에 비를 세웠다. 비의 모습은 당나라의 형식을 닮은 복고풍으로, 비의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았다. 즉 비의 몸돌 윗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새긴 후 그 중앙에 비명칭을 새기는 공간을 두었다.

 

비문의 글은 이색이 짓고, 글씨는 권중화가 쓴 것으로, 나옹화상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비의 글씨는 예서체로서,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와 중원고구려비 이후 고려말에 와서 처음이다. 1997년 보호각이 불에다 비의 몸돌이 파손되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실시한 후 보존관리상 2001년도에 경기도박물관에 위탁 보관하고 있다. 비가 있었던 원래의 자리에는 비 받침돌인 귀부가 그대로 있으며, 원형을 본떠 만든 비가 세워져 있다.

 

양주-회암사지-무학대사탑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楊州 檜巖寺址 無學大師塔)

 

『보물 제388호』

절터의 북쪽 능선 위에 지공(指空), 나옹(懶翁)의 승탑과 함께 서있는 이 탑은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묘탑이다. 둘레에는 탑을 보호하기 위한 난간이 둘러져있다. 회암사의 주지이기도 했던 무학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활약한 승려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의 관계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이성계의 꿈을 풀이하여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이야기와 한양천도와 관련된 설화 등은 특히 유명하다. 조선 전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이 탑은 규모가 웅대하고 모양도 가지런하다. 무학대사묘비의 기록으로 미루어 1407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학대사탑-앞-쌍사자-석등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楊州 檜巖寺址 無學大師塔 앞 雙獅子 石燈)

 

『보물 제389호』

절터의 동쪽 능선 위에 지공과 나옹 그리고 무학의 사리탑이 남과 북으로 나란히 서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하나로 붙여서 만들었으며, 그 위의 중간받침돌 은 쌍사자를 두어 신라 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보물 제656호)과 양식이 비슷한데, 만들어진 시기도 이와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무학대사의-묘비
무학대사의 묘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암사터에 세워져 있는 무학대사의 묘비로, 바로 뒤편에는 그의 묘탑(보물 제388호)이 함께 서 있다. 무학대사는 고려말 조선초의 이름난 승려로, 이름은 자초이고, 무학은 그의 호이다.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에게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혜명국사에게서 불교의 교리를 배운 후 묘향산에서 수도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 에는 태조의 부름을 받고 그의 스승이 되어 도읍지를 물색하기도 하였다.

 

그 후 회암사에서 머물다가 금강산의 금장암이라는 암자에서 입적하였다. 태종 10년(1410)에 왕명을 받들어, 변계량이 비문을 짓고 공부의 글씨로 하여 비문을 새겨두었다 하나, 순조 21년 1821)에 파괴되었고, 순조 28년(1828)에 다시 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나옹선사부도-및-석등

△나옹선사부도 및 석등 (儺翁禪師浮屠및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회암사 경내의 지공선사 부도 위쪽에 있는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이다. 나옹선사는 고려후기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이다. 오대산 상두암에 머물렀고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다.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절을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이 부도는 나옹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8각을 기본형으로,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3단을 이루는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은 배가 불룩한 북모양을 하고 있다. 둥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조각 없이 간결하다.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추켜올려갔다. 지붕돌 위로는 하나의 돌로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지공선사부도-및-석등

△지공선사부도 및 석등 (指空禪師浮屠및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회암사에 있는 이 부도는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많이 사용된 양식으로,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基壇)은 3단으로 올렸는데 그중 가운데 받침돌만 배가 볼록하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탑신(塔身)은 둥근 공모양이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선이 두툼하며 처마의 각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머리장식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두 작품 모두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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