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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사찰(寺刹)

남한산성 장경사

by @산들바람 2017. 10. 28.

장경사(長慶寺)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22-1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수축할 때 건립한 사찰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호.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남한산성 축성 때 팔도의 역승(役僧) 들의 숙식을 위하여 창건한 사찰로, 그 당시에 있던 9개 사찰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사찰로, 축성 당시 나라에서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고 전국의 승려를 번갈아 징집하여 사역(使役)을 돕게 하였는데, 각성은 1638년(인조 16)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

 

효종이 북벌(北伐)을 계획하였을 때에는 이 절에 총섭을 두어 승군(僧軍)을 훈련시키는 한편, 성내의 8개 사찰뿐 아니라 전국의 승군을 지휘하는 국방사찰(國防寺刹)의 소임을 담당하였다. 그 뒤 고종 때까지 250년 동안 북한산성과 함께 남한산성에도 전국에서 뽑은 270명의 승려들로 교체하면서 항상 번승(番僧)을 상주입번(常駐立番)하게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승병들의 국방활동의 일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당우로는 동향한 정면 3칸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진남루(鎭南樓) 칠성각 대방(大房) 요사채등이 있다.

 

장경사-산성성곽

△장경사 앞 산성성곽

장경사-장경사암문

△장경사 암문((長慶寺 暗門))

제1암문(장경사암문)>암문은 적의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물도 설치하지 않았다.

 

16개 암문중 다른 암문들은 좌우측의 성벽을 돌출시켜 적의공격에 대비하였는데, 이 암문은 좌우의 성벽을 돌출시키지 않았다 전체적인 모양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넓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암문을 나가 제16암문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장경사경내

△장경사 경내

남한산성-장경사요사채

△요사채

남한산성-장경사-불탑

△장경사(長慶寺) 경내

장경사는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수축할 때 건립하였다. 산성을 수축할 때 전국 8도의 승군을 소집하여 성을 쌓게 하고 이후 그대로 거주하면서 평상시에는 지역별로 구간을 나누어 성곽을 관리 보수하게 하였다.

 

장경사는 충청도 출신의 승군들이 머물러있던 사철이었다. 이곳은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의해 성안 사찰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폭파할 때 다른 사찰에 비해 비교적 피해가 적었기 때문에 사찰 중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보유문화재

경기도 문화재자료 15 『장경사(長慶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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