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宗廟)
사적 제125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2017.11.04일
종묘의 건물은 1394년 10월 태조가 한양로 수도를 옮긴 그 해 12월에 지어졌고,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다시 지어졌다.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향(祭享)을 올리는 유교적 전통 신전(神殿)으로 1395년(조선 태조 4년)부터 매년 이곳에서 종묘 제례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종묘(宗廟)는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으로 나누어 정전에는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선왕과 그 왕비의 신주를 순위에 따라 모시고, 영녕전에는 추존(追尊)된 선왕의 부모나 복위된 왕들을 모셨다.
외대문(外大門)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정문은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검박하고 단순하다. 정문밖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된 어정(御井)이 있다.
신로(神路)
종묘 제례등 의식을 위해 만든 길로, 가운데 길은 신주와 향. 축이 들어가는 신향로, 동측의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 서측의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 이다.
향대청(香大廳)
향대청(香大廳)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지당(池塘)이 있고, 그 동쪽으로 망묘루, 공민왕 신당, 향대청 일곽이 있다. 향대청은 종묘에서 사용하는 양축폐(香祝幣) 등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祭享)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재궁(齊宮)
임금이 세자와 함께 제사를 준비하던 곳으로 어재실 또는 어숙실이라고 불린다.
재궁(齊宮)
십이장복(十二章服)
면복은 면류관과 관복을 통칭하는 왕이나 황제의 예복으로 구장복과 십이장복이 있다. 십이장복은 대한제국 선포 후 고종황태자와 순종효황제께서 국가의식에 착용하였다.
재궁(齊宮) 뒤뜰
정전(正殿)
정전(正殿)
종묘 정전은 매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신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문인 신문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길게 늘인 점에 있다.
정전(正殿)
정전 신위 봉안도
종묘 추향제재 봉행
정전 제향 13:30~16:00
종묘 추향제재 봉행
정전 제향 13:30~16:00
영녕전(永寧殿)
영녕전 신위 봉안도
영녕전(永寧殿)
영녕전은 신실 하나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지만 부재의 크기가 정전보다 약간 작고 전체 건물 규모도 정전보다 작기 때문에 정전에서와 같은 장대함을 느끼기에는 뒤지는 감이 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공간이 한눈에 쉽게 들어와 친근감을 더해준다.
정전(正殿) 수복방
정전 동문북쪽에 위치한 수복방은 두벌장대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단칸의 맞배집으로 수복들이 머무는 곳이다.
전사청(典祀廳)
제례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이곳에 제사용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용 우물인 제정(祭井)이 있다.
감나무
종묘(宗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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