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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문화유산

서대문안 경희궁

by @산들바람 2021. 2. 28.

조선의 5대 궁궐

서대문과 광화문 사이 경희궁 지 (慶熙宮 址)

 

변덕스러운 요즈음 날씨 2월의 마지막 주말 맑은 하늘을 보여주고 있어 서대문 새문안로에 있는 경희궁을 찾았다. 경희궁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지내던 곳으로 궁의 서쪽에 있다 하여 서궐이라 부르던 궁궐로, 광해군 시절 개축하면서 창덕궁의 별궁이라 하여 경덕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영조대왕 때 와서 경희궁으로 개칭을 한 궁궐로 근대에 와 복원해놓은 궁궐이다.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興化門)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경희궁은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가 흥화문을 때어가 자신의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을 사용하던 것을 해방 후 박문사 자리에는 영빈관,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산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1988년 경희궁을 복원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서울증고등학교 터

현재의 흥화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있었던 서울 중고등학교 터, 이곳은 원래 경희궁이 자리했었다. 1980년 이전시키면서현재는 공터이다.

 

 

 

복원해 놓은 경희궁(慶熙宮)
경희궁(慶熙宮) 숭전문(崇政門)
숭전문 안 숭정전崇政前)

경희궁의 정전으로 경종, 정조, 현종 임금은 이곳에서 즉의식이 거행되었다.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경희궁지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위치에 발굴된 기단석 등을 이용하여 복원해 놓은 것이다.

 

숭정전 앞
자정문(資政門)

숭정전 뒤 자정전으로 가는 문

 

자정전(資政殿)

자정전은 경희궁의 편전으로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 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자정전 서쪽에는 발굴을 통하여, 행랑의 바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이 발견되어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여 복원하였다.

 

서암(瑞巖)

이 바위는 임금님 바위라는 뜻의 '왕암(王巖)'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이 있다. 숙종 때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의 '서암(瑞巖)'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두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바위에 깎아놓은 물길이 옛 자취를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태령전(泰寧殿) 의 영조 어진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다.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로,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던 태령전을  "서궐도안"에 따라 복원해 놓은 건물이다.

 

서암에서 본 걍희궁
경희궁 산책길
경희궁지(慶熙宮址) 복원사업

지금의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1987년 흥화문, 1991년 숭정전, 자정전과 회랑은 1998년, 태령전과 그 일곽은 2000년에 각각 경희궁내에 복원해 놓은 궁궐로, 기존 있던 자리에서 서쪽으로 100여 m 이동하여 복원하였으며, 지금의 경희궁은 몇몇 전각들이 복원되기는 하였으나. 대분분의 전각들은 사라지고 궁궐터도 많이 축소되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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