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행궁
(水原華城行宮)
사적 제478호
1796년 창건, 2003년 중건 경기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번지 화성행궁은 수원 화성 안에 건축된 행궁으로, 정조가 융건릉에 능행 할 목적으로 건축하였으며, 화성행궁(華城行宮)을 2011년 7월 28일 수원 화성행궁(水原 華城行宮)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화성행궁(華城行宮) 광장
행궁 앞 하마비 (下馬碑)
계급의 위, 아래를 막론하고 이곳을 지나갈 때는 말에서 내리라 [下馬]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풍루(新豊樓)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그 위치가 외삼문(外三門)에 해당하며, 신풍루의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좌익문(左翊門)
신풍루를 통과하여 마당을 지나면 나오는 문으로 중양문 앞 동쪽에 있는 중 삼문으로, 좌익이란 곁에서 돕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일제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98년 복원한 문이다.
서리청 [書吏廳]
서리는 문서의 기록 및 수령, 발급담당하던 아전으로, 비장청 앞에 위치했으며, 2002년에 복원되었다.
남군영[南軍營]
장용외영 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親軍衛)가 좌, 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숙위하는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2002년에 복원된 건물
비장청 [裨將廳]
조선 시대, 감사, 유수, 병사, 수사, 경외 사신을 따라다니며 일을 돕던 무관 벼슬인 비장들이 대기하거나 사무를 보던 곳
뒤주
곡식을 담아 보관하는 생활용기로, 쌀뒤주는 보통 1~2 가마 들어가는 크기이며, 1762(영조 38)년 윤 5월에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앙부일구 (仰釜日晷)
보물 제845호로 직경 35.2cm, 높이 14cm
1434년(세종 16)에 처음 제작된 가마숱모양의 조선시대대표적인 해시계. 북군을 향한 영침의 그림자의 따라 시각과 계절을 알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유여택 [維與宅]
평상시에 화성유수가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다, 임금이 행차 시에는 잠시 머무르며 신하를 접견하는 건물이었다 1998년 복원
궁중부엌으로 소주방燒廚房)으로 불린다.
복내당(福內堂)
행궁의 내당(內堂)으로 정조가 행차 시에 머물렀으며, 평상시에는 화성유수 가족들이 거처하였다., 1997년에 복원하였다.
장락당(長樂堂)
순조에게 물려주고, 어머니를 모시고, 수원에서 머를 를 때를 위해 건립한 건물로, 일제강점기에 파괴된 것을, 1997년에 복원
장락당이 지어 진다음 해 이곳에 혜경궁 홍 씨가 머물렀다.
화령전 [華寧殿]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뜻을 받들어 세운, 정조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영전(影殿
미로한정{未老閒亭}
행궁 후원(後苑)에 만든 정자로 미로한정이라는 말은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
미로한정에서 본 행궁
화성행궁(華城行宮)
반차도(正祖大王 班次圖)
느티나무
수령 600년 이상된 노거수로 수원을 지켜론 신령스러운 나무로 영목(靈木), 신목(神木), 규목(槻目)으로 플리어 왔다.
집사청(執事廳)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로 2002년 엣모습대로 복원하였다.
신풍루(新豊樓)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그 위치가 외삼문(外三門)에 해당하며, 신풍루의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행궁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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