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르네상스
예장 공원 개장
남산의 르네상스가 완성되어 지난 6월 9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남산 르네상스 마스타 플렌을 발표하였다, 남산 생태환경개선, 지난 역사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공사 지연 등 우여곡절 끝에, 사업을 시작한 지 12년 만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 오세훈 시장의 시작에서~완성까지, 공사 지연 덕에 오세훈 시장 손으로 마무리하여 예장 공원으로 돌아왔다.
남산의 르네상스 예장 공원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사터와 중앙정보부 자리에 지상에는 예장 공원, 지하 1층에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기념관이, 서울광장의 2배 규모 되는 1만 3036㎡ 녹지공간을 조성하여, 이제는 명동역에서도 예장 공원으로 해서 남산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예장 공원 국치터와 남산 소나무 숲길
예장 공원 둘레길
남산의 고유수종인 남산 위에 저소 나무~군락지를 조성 송림숲을 걷는 숲길
소나무숲길 중간의 전망대 오름길
서울시내와 남산이 조망권에 들어오는 전망대
예장 공원 주변에는 18종의 교목과, 32종의 관목 등 6만 2000주를 심어 풍성한 녹지대를 조성해 놓았다.
일제 강점기가 물러간 후, 남산 중정부 6국이 들어서 있던 자리로, 일반인 접근이 어려웠던 시절의 남산, 그 시절에는 "남산" 하면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친다는, 중앙정보부를 말하던 시절이었다.
중정 6국 앞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관사터(국치터)
예장 공원의 작은 분수대 쉼터 공간
예장 공원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숲길
예장 공원에서~ 기억의 터 가는 숲길
명동역 1번 출구 기억의 터 담벼락 길로 올라가면 예장 공원에서 올가 가는 남산 기억의 터 입구에서 만나게 된다.
남산 아래 치욕의 조선 침략 교두보였던 통감관저 자리애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를 세운다는 것은 처음에는 할머니를 모욕하는 것으로, 거부감이 들었었다. 총감 관저와 위안부 할머니가 한 장 소에 존치한다는 것 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통감관저와 기념물들은 "기억의 터" 의미를 더욱 확연하게 하는 역할로 머물게끔 하였다.
남산 기억의 터 map
남산 기억의 터(址)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구성하여, 직선인 통감의 기록물들과 이루도록 하였다. 거 억의 터는 공원 위나 어는 방향에서 보든 새로운 풍경이 되도록 조성항 공간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아픈 역사가 잊히는 것입니다.
피해자 할머니 274명
1910년 5월 22일 경술국치, 합병조약이 체결되었다. 국치 뒤 이곳에 조선총독부 관저가 세워졌다. 서울시는 이곳에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 여기에 "거꾸로 세운 동상"이 세워졌도, 그 이듬해에 기억의 터가 세워졌다.
하야시 곤스케는 고종황제와 각료 대신을 겁박하여 을사늑약을 강요 한자로, 일제는 그 공으로 남작을 내리고, 대한제국이 국치를 당한 이곳에 동상을 세웠다. 동상 이름은 남작 하야시 곤스케군상이다.
광복 70년 주년이 되는 해에 부서져 주변에 둥글고 있던 잔해를 모아 "거꾸로 동상"을 세워 욕스러움을 기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 한국 통감관저
치욕스러운 국치 통감관저 터
기억의 터 뒤로 남산 오르는 길
계단에는 과실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로 계단을 덮고 있다.
남산 오름길에서 서울 유스호스텔로 내려와 기억의 터로 내려가는 길목의 세계 인권선언문 담벼락 길
명동역①번 출구로 나와 예장공원으로~ 예장 공원 위 남산 가는 숲길로~ 기억의 터를 돌아보고 내려워~ 이회영 6형제 가족 독립 운동가 전시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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