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사(龍門寺)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번지
용문산(龍門山) 중턱에 자리한 천년고찰용문사는 통일신라시대인 913년(신덕왕 2) 대경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혹은 통일신라 말 경순왕(재위 927~935)이 행차하고 창건했다고도 한다.
고려 말 1378년(우왕 4) 정지국사 지천 스님이 대장경을 봉안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대표적인 사찰이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세조가 되기 전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보전을 지었고, 왕위에 오른 뒤 정희왕후와 더불어 대규모로 중창하였다.
용문사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30호 은행나무는 수령 1,100년에 높이 14m나 되는 거목인데,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미리 조짐을 보여주는 영험으로 유명하다. 일명 정삼품송(正三品松)이라고 부른다.
△ 일주문(一柱門)>1986년 박정원이 단청을 하였으며, 사찰에 들어서는 첫 문이라는 뜻
△요사(寮舍)
△ 대웅전(大雄殿)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건물로 최근에 지었으며, 안에는 중앙의 불단에 석가삼존불을 모시고 삼면의 벽에 작은 천불(千佛)을 가득 봉안했다. 또한 신중탱과 천수관음 불화, 그리고 동종이 있다.
△ 관음전(觀音殿)
관음전 안에는 관음보살좌상과 후불탱이 있으며, 관음상은 조선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금동 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
경기유형문화재 제172호」
관음전에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수작
보유문화재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72호 『 금동 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
보물 제531호 『 정지국사부도(正智國師 浮屠) 』
천연기념물 제30호 『 정삼품송(正三品松)으로 불리는 수령 1,100년 은행나무 』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1993년 최기영 씨가 건축하였고, 단청은 박정원 씨가 하였다.
△은행나무 큰 종
△정지국사부도_비(正智國師 浮屠_碑) 보물 제53호
용문사(龍門寺)에서 약 300m 떨어진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지국사(正智國師);(1324;1395)의 행적 등을 기록한 것으로, 1971년 7월 7일 보물 제531호로 지정되었다.
부도높이 2.15m, 비 높이 1.2m이며,. 부도는 화강암, 비는 점판암이다.
정지국사는 1395년 (태조 4) 천마산 적멸암(寂滅庵)에서 입적 다비(茶毘)하였으며, 이때 찬연한 사리가 많이 나오자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를 추증하였다고 한다.
△정삼품송(正三品松)으로 불리는 수령 1,100년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호」
동양최대의 용문사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927~935 제위)의 세자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625~702))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이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성장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나무는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나무라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정 3품 이상에 해당하는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 받기도 하였다. 정미년 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은 화를 면했으며,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는 순간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 한다.
또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으며,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