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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문화유산

개천에서 생태공간으로

by @산들바람 2021. 6. 27.
조선시대 개천
도심속 생태공간 청계천

자료/청계천박물관


조선왕조의 새도읍지 한양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하천은 풍수상으로도 명당(明當)인 명당수 였다. 수시로 범람하는 하천은 자연상샅태로 유지 할 수는 없었다. 태종11년 개거도감을 설치하여 자연하천을 정비하고 축대를 쌓아 개천시대를 열어 600여년 세월을 지내왔다.


조선의 개천시대

조선의-개천다리

선선시대 대표적인 개천의 다리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동대문 오간수문

옛-사진속의 개천

조선시대 옛 사진으로보는 개천과 개천 사이를 오가게 만든 조선시대 다리

옛사진속의개천②

옛-사진속의개천③

옛사진속의개천④

옛사진속의 개천⑤

옛 사진속 조선의 개천-동영상


일제 식민지 청계천 시대

일제 식민지시대인 1914년경 조선시대의 개천에서 맑은계곡물이 흐르는 청계천(淸溪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시기 부터 청계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맑은계곡물이 흐르는 청계천(淸溪川)이 산업화되면서 오염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 식민지시대~ 해방되기 까지의 청계천역사


해방과 6.25동란 이후 무허가 판자촌시대

시대적 아픔 청계천 판자촌

하천바닥에 큰 기둥을 세우고 그위에 자재가 없어 널판지로 대충 집을지어 겨우 비바람을 피할정도의 허술한 판자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거지, 빈민가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오페수로 여름이면 청계천 주변은 악취가 진동하는 오염된 비참한 곳이지만 빈민들은 삷의 터전이었다.

청계천 빈민가 삶의 터전

판자촌시대 청계천 기록사진

1958년 오염된 청계천을 덮어버리는 예산부족으로 국제원조를 받아 일부는 국비로 청계천을 복개하였다. 고가도로를 세우고, 미사일이든 무엇이든 만들수 만들수 있다는 전설의 세운상가라는 거대한 상가가 세워지는등 새로운 청계천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본래의 맑은계곡물이흐르는 본래의모습으로 되돌리는
생태환경 청계천 새시대

세월은 또 흘러 2003년 청계천을 복개했던 구조물을 없애고, 그시대 유명했던 3.1고가도로도 철거하여 역사속으로 사리지게[ 되었다. 823일 이라는 긴여정속의 새로운 자연생태적 공간으로 새롭게 본래의 청계천 새물맞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시열린-청계천

2005년 10월01일 새로운 물길로 돌아온 청계천(淸溪川)

자연생태공간으로 탈바꿈한 청계천

생태공간 청계천
도심속-휴식처

조선의 도읍지 한양의 동서를 가로질러 게곡물이 흐르던 개천은 "서울 정도 600년" 세월속에, 참 많은 시대적 착오를 거치면서, 2003년 7월 복원공사를 시작한지 27개월, 청계천복원 추진본부를 구성 사업 착수한지는 39개월만에 청계천이 역사적인 새로운 생태적 공간으로 재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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