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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여행(축제)

청계천의 역사

by @산들바람 2020. 1. 22.

청계천 박물관

청계천의 역사

2020.01.21일

 

청계천 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청계천의 역사를 볼 수 있게, 귀중한 역사자료와 함께 상설전시, 특별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박물관 정면의 긴 튜브 형태는 청계천 물길을 상징한다고 한다.

 

조선의 도읍지로 정한 한양의 한 복판을 동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하천은 도성민의 생활용수와 하수를 공급하는 반드시 필요한 자연물이었다. 태종은 개천도감을 설치, 자연하천을 정비하고, 축대를 쌓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개천이다. 개천은 도성민의 알상과 깊은 관련을 맺으며 600년여 년을 흘러왔다.

 

 

중앙의 웃대(상촌)에서~ 중촌~ 아랫대(하촌) 으로 이어지는 개천. 중촌은 백성의 삶을 품은 저잣거리였다.

 

 

 

웃대는 진경과 풍류의 명승지였다. 웃대또는 상촌은 지금의 백운동천과 옥류동천 주변을 포함하는 광통교 위쪽 상류 일대를 말한다.

 

조선의 하천은  광통교위 위 인 상촌, 광통교에서 종묘 앞에 이르는 중촌, 여기서 동대문 부근 오간수문에 이르는 하촌이 있다.

 

한양 map

 

조선의 개국에서~ 근대까지 개천의 역사

 

동대문 주변 군영에서는 군병들이 상업 활동을 허용하였다, 이로 인해  군병과 상인이 일체화하는 현상 이 나타났다. 동대문 밖에서 생산된 채소들이 거래되는 큰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훈련원 주변에서 생산된 배추와. 왕십리에서 일대의 미나리는 유명했다. 동대문의 채소, 남대문의 생선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개천 주변에는 홍수로 제방이 무너지느것을  방지하기 위해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다.

 

청계천의 역사

 

조선 후기 청계천 다리 밑과 동대문 주변 오간수문 주변은 거지들의 공간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도 서울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청계천 다리밑 에는 가난한 사람 들어 모여 살았다.

 

청계천 복개공사

 

청계천의 근대사

 

 

 

1960~70년대 전자제품 세운상가 전성시대

 

청계천 의 변화 복원사업

 

청계천의 오늘과 어제

 

어려운 삷 청계천 판자촌 체험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해보는 소중한 기회

 

판자촌과 청계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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