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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5대궁궐5

조선 5대궁궐 경희궁지 숲길 경희궁지(慶熙宮址) 조선 5대 궁궐 사적 제271호 2023.11.19일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으로, 광해군 9년(1617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5년(1623년) 완성한 궁궐로,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입니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게 됩니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면서,.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 2023. 11. 21.
창경궁에서 창덕궁 설경 산책 창경궁에서 창덕궁 설경 세계유산 조선 5대 궁궐 함박눈 내린 다음날 고궁을 찾았습니다. 영하 10℃이하의 추운 날씨, 서울 폭설로 내린 눈이 녹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기대했던 설경은 아니었네요.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과 금천교 정전으로 들어가는 명정문은 현재 보수공사 중에 있어 출입통제 중입니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전전 옆으로 왕실과 관련이 있는 관청이 자리했던 궐내각사가 있던 자리로, 일제 강점기 시절 왕실 관청을 없애고 이곳에 창경원으로 격하 동물원을 만들었으나, 1980년대 복원작업을 진행 창경궁 옛 모습으로 복원 공개하고 있습니다. 창경궁에서 종묘로 가는 사잇길로, 끝 지점에 종묘 북신 문 이 보입니다. 현재는 이 길은 미공개 중이나, 창경궁에서 종묘로 들어갈 수 있게 통합관람 체계를 준비 중에 .. 2022. 12. 19.
창경궁에서 창덕궁 고궁산책 유네스코 유산 조선의 5대 궁궐 창경궁(昌慶宮)에서~ 창덕궁(昌德宮) 산책 2020.04.06일 미세먼지 없는 주말, 코로나 영향인지 창경궁, 창덕궁 모두 상상 외로 인적이 뜸한 것이 한적 하기만 하다. 코로나 걱정 없이 고궁산책을 즐겼다. 보물 제384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弘化門) 활짝 만개한 자두꽃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조선의 궁궐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서울시민들의 놀이터가 되었으나, 해방 후 40여 년이 지나서야 벚나무를 없애고 문정전과 월랑 등을 복원 정비하면서 창경궁의 이름을 되찾았다. 창경궁을 거닐다 보면 문득 어렸을 적 봄이 오면, 벗꽃구경하러 가던 창경원 시절. 도시락, 사이다 싸가지고 소풍 가던 생각이 나는 우리 역사의 가슴아픈 비극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인 창경궁이다. 홍화문.. 2020. 4. 6.
조선의궁궐 창경궁 昌慶宮 조선의5대궁궐 창경궁(昌慶宮) 2219.09.20일 조선의5대궁궐중 한곳인 창경궁은, 1909년부터 일제가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 박물관등을 지어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었다. 그후 80여년이지나서야 벗나무를없애고 문정전과 월랑등을 복원정비하면서 창경궁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어렸을때 봄이되면 김밥 싸가지고 벗꽃구경하러 창경원으로 소풍가던 생각이나는 우리역사의 가슴아픈 비극을 간직하고있는 창경궁을 찾아 산책해 보았다. 창경궁의정문인 홍화문은 보물 제384호로지정되어 있다. 창경궁은 궁의 중심부분이 동향이어 정문인 홍화문도 동쪽으로 세워졌다. 대문안쪽에 명당수인 금천을 흐르게하고, 그위에 옥천교(玉川橋)를 건너는 상징적인 마당을 만들었다. 옥천교(玉川橋) 보물 제386호 홍화문에서 명정문(明政門) 사이에.. 2019. 9. 20.
경복궁 조선5대궁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조선의 대표궁궐 경복궁(景福宮) 2019.09.13일 추석연휴 조선의 대표궁궐인 경복궁을 찾았다. 경복궁은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삼으면서 건설한 것으로,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를 지나고있다. 광화문(光化門)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에있는,궁의 정문으로,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흥례문(興禮門)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을 지나면 나오는 중문(中門)으로, 원래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이었으나,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이름이 '홍력(弘歷)'이어서 황제의 이름자를 피하기위해 홍(弘)을 흥(興)으로 바꿨다고 전해진.. 2019.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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