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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문화유산

조선5대궁궐 경희궁

by @산들바람 2017. 11. 3.

경희궁(慶熙宮조선 5대 궁궐(사적 271호)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다. 원래 경희궁은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으며, 이름을 바꾸고, 280여 년 동안 동궐인 창덕궁, 창경궁과 더불어 서궐의 위치에서 양대 궁궐의 자리를 지켜왔다.

 

흥화문

흥화문(興化門)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은 금천교 동쪽, 즉 현재의 구세군빌딩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흥화문을 떼어갔었다. 광복 이후 박문사를 폐지되고 그 자리에는 영빈관에 이어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그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88년 경희궁의 현재위치로 옮겨졌다

 

금천교

금천교(禁川橋)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들어서면 궁내의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흐르던 금천에 놓인 돌다리이다.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 사이에 새겨진 도깨비얼굴은 대궐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띤다. 지금은 역사박물관 입구에 전시되고 있다.

 

경희궁-서울중고등학교-터

서울중고등학교 터

 

본래 경희궁이 자리했던 곳으로 1946년부터 서울중고등학교가 자리 잡아 1980년 이전하였다.

숭정문입구

숭정문(崇政門)

숭정전_01

숭정전(崇政殿)

숭정전_02

숭정전(崇政殿)

 

경희궁의 정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으로,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숭정전은 경희궁 창건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 10) 경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경희궁지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위치에 발굴된 기단석 등을 이용하여 복원한 것이다.

 

숭정전_03

숭정전 내부

 

당가에 용상을 설치하였는데, 그 뒤로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두었다. 우물천장에는 마주 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겨두었다

숭정전_04
자정문

자정문(資政門)

자정전

자정전(資政殿)

 

자정 전은 경희궁의 편전으로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 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1617~20년(광해군 9~12) 사이에 건립되었으나, 일제가 훼손하였다.

 

서울시에서는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자리에 서궐도안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자정전 서쪽에는 발굴을 통하여, 행랑의 바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이 발견되었기에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여 복원하였다.

 

서암_01

서암(瑞巖)

 

경희궁 터에는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이용한 시설들도 많이 있었는데, 현재는 서암과 영렬 천만이 그 흔적을 말해준다. 서암은 태령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로, 바위샘이라는 뜻을 갖는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샘이 그 속에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

 

이 바위는 임금님 바위라는 뜻의 '왕암(王巖)'으로 불렸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곳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 1708년(숙종 34)에 이름을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의 '서암(瑞巖)'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서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두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 서암을 새겨두었던 사방석은 전해지지 않고, 다만 바위에 깎아놓은 물길이 옛 자취를 전해주고 있다.

 

서암_02
태령전

태령전(泰寧殿)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다.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새로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곳을 중수하여 어진을 봉안하였고,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던 태령전을 서울시에서는 `서궐도안` 에 따라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하였다.

 

영조어진

영조의 어진

 

 

 

복원해놓은-경희궁_01
복원해놓은-경희궁_02
복원해놓은-경희궁_03
복원해놓은-경희궁_04
복원해놓은-경희궁_05

경희궁지(慶熙宮址)

 

복원사업 경희궁을 일제가 매몰시켰지만, 발굴결과와 문헌 고증을 거쳐 경희궁내 각 전각을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 1987년에는 흥화문을, 1991년에는 숭정전을, 자정전과 회랑은 1998년에, 태령전과 그 일곽은 2000년에 각각 경희궁내에 복원하였다.

 

다만 흥화문은 원 위치에 구세군회관이 위치한 관계로 원위치에 옮길 수가 없어 서쪽으로 100여 m 이동하여 복원하였으며, 지금의 경희궁은 몇몇 전각들이 복원되기는 하였으나. 대분분의 전각들은 사라지고 궁궐터도 많이 축소되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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