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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사찰(寺刹)

남양주 봉선사

by @산들바람 2017. 10. 25.

봉선사(奉先寺)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전국제일의 樹林 광릉(光陵) 초입에 자리 잡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고려광종 20년에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창건한 고찰. 969년 고려광종 20년에 법인국사(法印國師)가 창건하고 운악사(雲嶽寺)라 하였다. 그 후 조선예종 1년에 세조(世祖)의 비(妃)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 광릉(光陵)이라 하고, 선왕의 능침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地福寺)로 삼고 봉선사(奉先寺)라 하였다.

 

봉선사-청풍루

△청풍루(淸風樓)

 

6.25 사변 전에 천왕문과 해탈문, 그리고 소설루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112평의 대형 누각으로, 1980년 봉선사 신도들의 조약돌 모으기 불사로 이루어진 건물건물 외부는 사면에 걸쳐 4기의 편액이 걸려있는데, 남쪽에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賢)이 쓴 청풍루 편액이 걸려있고, 북쪽에는 시암(是庵) 배길기(裵吉基) 선생이 쓴 설법전 편액이, 서쪽에는 심은(沁隱) 전정우(全正雨)가 쓴 불천회관이, 동쪽에는 진성(眞性) 스님이 쓴 중 해운집(衆海雲集)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판사-관무헌

△판사관무헌(判事官務軒)

 

6.25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98년에 복원한 건물. 어실각(御室閣)으로 인해 봉선사 주지는 조선 왕실로부터 봉향판사(奉香判事)의 작위를 수여받았는데, 판사관무헌은 역대 봉향판사(주지)가 머물던 곳

 

운하당

△운하당(雲霞堂)

 

1963년에 능허, 운경 두스 님이 복원하였으나, 근래 화재로 소실되어 2003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복원한 건물로, 운하란 구름과 노을이라는 뜻으로서 납자와 단월이 항상 구름같이 모여 복과 혜를 닦는 곳이란 뜻이며, 현재에는 신도들의 교육장소, 대중방으로서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

 

큰법당

△큰 법당 봉선사 대웅전(奉先寺 大雄殿)

 

초창(初創)은 예종 1년으로, 89칸의 절규모로 서울 이북에서 가장큰절로 전해지고 있으며, 재창(再創)은 1637년 계인(戒敏) 선사에 의한 일괄 중수(重修) 때이며, 삼창(三創)은 1970년 운허스님에 의해 건립된 전각으로 스님의 뜻에 따라 큰 법당으로 불린다.

 

남양주봉선사괘불

△남양주봉선사괘불 (南陽州奉先寺掛佛)

주소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55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165호

지정일 1997.12.26

한자명칭 南楊州奉先寺掛佛

 

이 괘불은 1735년(영조 11) 상궁 이성애(李性愛)가 영빈 김 씨(寧嬪金氏,1669~1735:정조의 모친)를 위하여 제작하였다. 길이 7.5m 화폭 4.58m 크기의 괘불(掛佛)이 큰 법당 안의 괘불함 속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 괘불은 석탄일과 재(齋) 재의식 때 현괘(懸掛)하고 있다.

 

△정중탑(庭中塔);이탑은 경복궁에 있는 갈항사탑(葛項寺塔)을 모방한 것으로, 1972년에 세웠으며,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奉安)되어있다.

 

관음전

△관음전(觀音殿)

 

관음전은 원래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 전 차였는데,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후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하여 관음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장전

△지장전(地藏殿)

 

1999년 건립하였으며. 이 건물은 원래 어실각(御室閣)으로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었으나, 6.25 때 전소된 후 정부의 지원으로 재건

 

개건당

△ 가벼운 당(開建堂)

 

봉선사를 창건하여 開山한 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 씨와, 중건공덕주인 戒敏선사, 鄭文殊行을 모시기 위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조사 전을 건립하면서 이곳은 스님 외의 인물들을 모시는 전각으로 바꾸었고, 현재는 봉선사의 중건공덕주인 鄭文殊行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조사전

 

이곳은 조사 전으로 월초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스님들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삼성각

△삼성각(三聖閣)

 

月初 스님이 1926년에 건립한 이후 봉선사에서 한국전쟁 때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전각이다. 건물의 정면에는 山靈閣, 北斗閣, 獨聖閣; 등의 현판을 달았으나 일반적으로 삼성각으로 부르고 있다. 내부에는 1903년 元興寺에 봉안했다가 옮겨온 칠성탱과 독성탱, 그리고 1973년에 조성한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청풍루-설법전

△ 청풍루(淸風樓) 설법전(說法殿)

 

6.25 사변 전에 천왕문과 해탈문, 그리고 소설루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112평의 대형 누각..

 

⊙봉선사 대종(奉先寺大鍾)

보물 제397호

공식명칭남양주봉선사동종 (南楊州 奉先寺 銅鍾)

 

한반도에 많이 남아있지 않은 조선 초기의 동종. 남양주 봉선사 동종은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봉선사를 다시 지을 때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봉선사-대종

△ 봉선사 대종(奉先寺大鍾)

 

이 종(種)은 임진왜란이 전에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조선전기의, 동종(銅鍾)으로, 예종 원년(1469)에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봉선사를 건립할 때 함께 만들어졌다. 이 종(種)은 음통(音筒) 없이 두 마리의 용(雙龍)이 용뉴(龍鈕)를 만들고 있고 띠 장식대를 한 종신을 갖추고 있어, 외래적인 유형에 속한다.

 

이 종(種)은 음통이 없는 점. 종(種)의 입구가 넓어지고 몸통에 두 가닥의 띠를 넣은 점. 조각수법이 통일신라 이후의 법종양식을 따르지 않은 점등에서 조선시대 범종양식의 선례가 되는 작품이며, 조선전기의 동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銅鍾)이다.

 

가람배치도

△봉선사(奉先寺) 가람배치

 

청풍루-누각

△ 청풍루(淸風樓)

 

6.25 사변 전에 천왕문과 해탈문, 그리고 소설루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112평의 대형 누각으로, 1980년 봉선사 신도들의 조약돌 모으기 불사로 이루어진 건물건물 외부는 사면에 걸쳐 4기의 편액이 걸려있는데, 남쪽에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賢)이 쓴 청풍루 편액이 걸려있고, 북쪽에는 시암(是庵) 배길기(裵吉基) 선생이 쓴 설법전 편액이, 서쪽에는 심은(沁隱) 전정우(全正雨)가 쓴 불천회관이, 동쪽에는 진성(眞性) 스님이 쓴 중 해운집(衆海雲集)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보유문화재

경기도 남양주시 유형문화재 제165호『남양주 봉선사괘불(南楊州奉先寺掛佛)』

보물 제397호『남양주 봉선사 동종 (南楊州 奉先寺 銅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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