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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둘레길/문화유산

조선의법궁 경복궁

by @산들바람 2017. 11. 2.

조선의 법궁 경복궁

 

〈시경〉의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의미를 따 이름을 지었다. 1394년(태조 3)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완공되었다. 백악(白岳)과 삼각산(三角山)을 등지고 한성(漢城) 중심 좌우에 6조 관아(六曹官衙)가 있는 대로광장에 조영(造營)된 궁궐로서 중국의 고대 궁궐을 만드는 법식인 하늘의 별자리를 본뜬 오성좌 배치를 그대로 따랐다.

 

경복궁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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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光化門)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며, 궁성의 정문으로, 국왕이 드나드는 정문이기도 했지만,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 없이 궁지에 따라 '오문(午門)'으로 부르다가, 태조 3년(1395) 정도전에 의해 '정문(正門)'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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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수문장교대식

①광화문 파수의식 : 11시, 13시 / 1일 2회 / 소요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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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례문(弘禮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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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문(勤政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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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勤政殿)

1867년에 중건된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이나 큰 조회와 같은 국가적 행사를 치르는 정전으로, 사방에 행각을 둘러 넓은 마당을 만들었으며, 2001년에 흥례문과 외행각, 영재교 등을 복원하였다. 근정전(勤政殿) 국보 제223호 1395년(태조 4) 지은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되었으며, 2층의 목조건물로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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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전(思政殿)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1876년에 중창하였다. 사정전 앞 행각에 천지현황(天地玄黃)등 전자문순서로 이름을 붙인 창고가 있어 왕실의 요긴한 물품들을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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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康寧殿)

경복궁 내 왕의 침전이며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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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태전(交泰殿)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침전영역을 이룬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강녕전은 왕이 독서와 휴식, 싱하들과 면담을 하던 곳이고, 안채에 해당하는 교태전은 왕비가 거처하면서 궁 안 생활을 총지휘하던 곳이다. 1918년에 강녕전과 교태전을 뜯어 창덕궁으로 옮겨 사라진 것을 1955년 복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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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산 정원((峨嵋山)과 굴뚝

보물 제811호

교태전뒤편에 계단식 화단을 쌓아 아미산을 조성하고, 아미산정원은 뒷산인 북악의 정기를 침전까지 이어주며, 왕비의 후원답게 은밀하면서도 기품 있게 꾸며졌으며, 아미산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세계가 된다.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景福宮峨嵋山)은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의 구들과 연결된 굴뚝으로, 1985년 1월 8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811호로 지정되었다.

 

십장생 굴뚝 지경전 십장생굴뚝

(景福宮慈慶殿十長生)

보물 제810호

자경전으로 연결된 십장생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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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전(修政殿)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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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景福宮慶會樓)

국보 제224호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으로, 중건당시에 경회루 연못에 2마리 청동 용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12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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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정(香遠亭)

보물 제1761호

고종이 건청궁에 기거하던 1867년 경회루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그 중앙에 지은 것으로,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 다리를 놓아 취향교라 했는데, 이 다리는 6.25 전쟁 때 파괴되고 현재의 다리는 1953년 남쪽에 새로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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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옥재(集玉齋)

고종의 서재로 사용되었던 집옥재를 궁궐 속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 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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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녕합(坤寧合ㅣ坤寧閣)

명성황후가 1884년~1895년까지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 8일 일본인 자객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어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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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乾淸宮)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모는 양반의 상한선인 99칸의 23.5배 되는 250칸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있기까지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파괴되어 총독부미술관으로 사용하던 것을 1998년 철거, 건청궁 원래대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 일반에게 개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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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복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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